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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를 위한 중2 사용 설명서 35화 : 입시 공부에 인생을 빼앗긴 아이들
이진아 2018-04-02 15:27:58
조회: 820 공감: 0
http://www.edupang.com/community/81386

 

  

부모를 위한 중2 사용 설명서 35화 : 

입시 공부에 인생을 빼앗긴 아이들 

 

딸아이가 중학생일 때만 해도 요리도 좋아하고, 청소도 같이 하고, 마트도 종종 같이 다녔다. 빨래도 걷어 오고, 퇴근하고 허기져 들어온 나에게 토스트도 해주고 하던 딸이었다. 물론 완벽하지도 숙달되지도 않은 수준이었지만 같이 하는 재미도 있었고, 집안일은 엄마, 혹은 부모의 몫이라고 생각하지 않도록 일부러 시키기도 했었다. 

 

내가 아이와 가사 일을 분담한 것은 한 인간이 인간으로 살 수 있는 기반이 바로 가사 일에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학교 다니는 동안 공부빼곤 해본 게 없어서 집안일이라곤 아무 것도 할 줄 모르고, 엄마의 손을 빌려야만 하는 상태로 살다가 결혼을 하고나니 사는 게 너무 힘들었던 나는 나와 똑같은 상태의 남편과 사느라 버거움이 두 배였다. 아들이 됐든 딸이 됐든 절대로 나처럼 살게 하지 않겠노라고 다짐을 했었던 터라 아이가 어릴 때부터 사소한 것도 같이 하도록 시켰었다. 

문제는 딸이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시작됐다. 아이가 하기 싫어해서, 이기적으로 변해서가 아니라 새벽에 나가면 밤이 늦어 들어오는 아이에게, 그보다 먼저 들어온 내가 설거지와 빨래개기를 미뤄놓고 기다릴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런 생활을 3년 하면서 아이는 집안일에 손을 놨다. 종종 일요일에 설거지를 시키려하면 피곤하다면 방으로 쏙 들어가 버린다. 이제 그런 일상이 습관이 되었고, 심지어는 다 해놓은 반찬 데워먹기가 귀찮아서 밥을 굶기도 했다. 건조대에 있는 빨래 좀 걷어달라고 하면 짜증스러운 표정부터 보인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며 시키는 나도 마음이 편치 않다. 그러다보니 나 역시 ‘공부하는 애 좀 더 편히 쉴 수 있게 해주자’라는 맘으로 갈수록 시키는 일이 적어졌다. 

그러다 수능이 끝나고 시간이 드디어 공부에서 손을 뗀 아이에게 나는 다시 집안일을 ‘의뢰’했다. 그러나 돌아온 건 짜증스러워하는 반응이었다. 이런 악순환이 반복되면서 마치 부부싸움 하듯이 딸과 갈등이 잦아졌다. ‘내가 네 시녀야? 하인이야? 그 동안은 네가 공부하느라 봐줬지만, 이제 공부도 안하잖아. 집에서 매일 쉬면서 일하다 들어온 엄마한테 밥까지 차려달라고 기다리니?’등 하루가 다르게 잔소리가 늘어갔다. 


너무 화가 나서 친구에게 투덜댔더니 자기는 어릴 때부터 엄마가 집안일을 많이 시켜서 많은 일을 했었다며 투덜댄다. 그래도 그 덕에 지금 인간답게 사는 것 같다면서 고3인 딸에게도 최소한 양말과 속옷은 빨도록 시킨단다. 동생에게 전화 걸어 또 투덜댔더니 자기는 엄마따라 음식도 하고 옆에서 도와드려서 지금도 엄마가 하셨던 대부분의 음식들을 할 수 있는 거라며, ‘공부만 했던 언니가 뭘 알겠어? 지금 벌받는 거야~~’하며 깔깔댄다.   

엄마따라 많은 집안 일을 했던 그 동생은 고등학교 교사다. 고등학교 교사인 그 동생은 고등학생 아들이 있고 작년까지 그 아들과 매주 캠핑을 다녔다. 아들이 고2가 된 올해부터 캠핑을 대폭 줄이겠다고 선언을 한 동생에게 ‘줄이는 게 아니라 2년 동안 참아야 하는 거 아니니?’라고 말했더니 ‘언니, 걔가 캼핑 안간다고 공부하겠어? 인간이 그렇게 살면 뭐해? 이제 걔가 우리랑 캠핑간다고 따라나서는 것도 얼마 안남았어. 할 수 있을 때 실컷 해야 지금도, 나중에도 행복해. 공부만 잘 하면 뭐해?’하며 웃는다.  
 
인간이 살아가는 데 자기에게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것들은 자기 손으로 할 수 있어야 한다. 스스로 하지 않으면 엄마 혹은 다른 가족들이, 타인이 불편해지기 때문만은 아니다. 무엇보다 자기 스스로 불편하다. 이사온 지 한 달이 되어가는데 집정리를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손놓고 있다가 주말에 엄마가 오시고 동생들이 와서 도와주고 간 후에야 겨우 사람사는 집 모습을 갖추고 살게 되는 이제 곧 나이 50이 되는 나는 이런 사실을 뼈저리게 느낀다. 자신의 일을 스스로 처리하지 못하면, 특히 집안일을 스스로 하지 못하면 살아가기 힘들만큼 불편하다. 불편함의 문제가 아니더라도 그것은 인간으로서 당연한 일이다. 자기가 자고 일어난 방을 치우고, 자기가 먹을 최소한의 음식을 만들 줄 알고, 그것을 치울 줄 알며, 같이 사는 사람들에게 그 일을 떠맡기지 않는 것. 이것은 인간이라면 당연히 해야하는 일이다. 할 수 있어야 하는 일이다.  



청소년시기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평생을 살아갈 힘을 얻는 부모와의 좋은 경험을 공유하고 추억을 만드는 일이다. 부모와의 관계가 좋지 않았던 사람들은 성인이 되어 성공하더라도 행복감을 못 느끼는 경우가 많고, 상대적으로 성공정도가 낮아도 행복감이 높은 사람들은 청소년기 부모와의 관계가 좋고 좋은 추억을 많이 가진 사람들이라고 한다.  

요리 좋아하고, 가족들 배려하고, 자기 신변 정리 잘 하던 내 딸아이가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어쩌다 그렇게 살가웠던 딸과의 관계가 부부싸움 지경에 이르게 됐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내 탓도, 아이 탓도 아니고, 입시 탓이다. 입시에 모든 것을 건 대한민국은 아이들이 스스로를 지키며 자기 존재의 방법을 익힐 시간을 주지 않는다. 학교도, 부모도, 사회도 아이들에게 인간으로서 존엄을 지키고 익힐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하지 않는다. 그런 기회를 다 빼앗고 오직 공부만 하라고 다그친다. 그렇게 공부만 하다가 설사 성공한다하더라도 그들이 인간적인 삶을 영위할 수 없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 이제 제발 아이들이 청소년기에 누릴 수 있는 다양한 감성을 발달시킬 수 있는 기회를 자신의 일을 스스로 할 수 있는 기회를 입시에 빼앗기지 않는 일상을 그들이 누릴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건 꿈일까?

이제 겨우 설거지를 자기 몫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지만, 또 다시 입시를 시작하는 딸에게 ‘힘들어도 일요일엔 설거지 좀 부탁해~~’라고 말하는 엄마에게 딸도 더 이상 짜증내지 않고 ‘알았어. 알았어~~’하며 베시시 웃는다. 입시에 아이들의 인생을, 인간으로서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이자 책임을 떠맡기 않도록 사회도, 가정도 새로운 생각을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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