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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겨진 자들을 위한 미술 : 현대미술은 어떻게 이별과 죽음 전쟁과 재해를 치유하고 애도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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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하게는 아끼던 물건을 잃어버리고, 사랑하는 연인이 떠나고 가족이 죽기도 하며, 전쟁과 자연재해로 인해 삶의 터전을 송두리째 빼앗기기도 하는 등 계속해서 상실을 경험하는 인간의 삶.『남겨진 자들을 위한 미술』은 현대사회에서 필연적으로 벌어지는 ‘상실’과 그 이후 찾아오는 ‘트라우마’를 예술 행위로써 애도하고 증언하려고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상실’의 의미를 살펴보고 시대의 현주소를 신랄하고 생생하게 보여준다.



다양한 ‘상실’의 사건 뒤 겪게 되는 개인적이고 사회적인 증후들을 미술의 관점에서 읽어낸 이 책은 온 가와라, 오노 요코, 양혜규, 이불, 마르셀 뒤샹, 솔 르윗, 안규철, 프란시스 알리스, 나카무라 마사토 등 현대미술 작가 16인이 각각 연인과의 이별, 가족의 죽음, 자연 재해와 도시의 재앙, 더 나아가 미술사적 차원에서 원본과 감각의 죽음까지 이미지로는 도저히 재현할 수 없는 상실의 사건과 증후를 어떻게 애도하고 증언했는지를 보여준다.

저자 : 우정아

저자 우정아는 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미술 UCLA 미술사학과에서 1960년대의 개념미술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은 책으로 《명작, 역사를 만나다》, 함께 옮긴 책으로 《장소 특정적 미술》이 있다. 일간지에 〈우정아의 아트스토리〉라는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최근에는 한국 현대미술에 등장한 개념적 작업의 계보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프롤로그

떠나간 연인: 펠릭스 곤살레스 토레스와 쑹둥

1 돌이킬 수 없이 잃어버린 것에 대한 기억

2 트라우마, 기억과 망각 사이

3 펠릭스 곤살레스 토레스 - 언제나 이미 잃어버린 것

4 쑹둥 -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것

5 관계와 기억

거세된 여자들: 메리 켈리와 루이즈 부르주아

1 나쁜 엄마

2 여성은 남성의 증후

3 메리 켈리 - 분리 불안과 욕망의 기호

4 루이즈 부르주아 - 연약하고 가련한 소녀

5 아버지·어머니의 이름으로

구원 없는 삶: 온 가와라와 오노 요코
1 신에서 범인으로

2 평범한 일상의 잔인함

3 온 가와라 - 한 개인의 통계적 죽음

4 오노 요코 - 살기 위해 신을 밟다

5 오늘, 새 하루

고향을 잃은 사람들: 히지카타 다쓰미와 양혜규

1 근대인의 향수병

2 사회적 증후로서 [전설의 고향]

3 히지카타 다쓰미 - 사라진 곳에 대한 기억

4 양혜규 - 단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고향’에 대해

5 귀신의 귀향

우리의 밝은 미래: 이불과 안규철
1 실패의 시간들

2 아름다움과 트라우마

3 이불 - 죽음으로의 도피

4 안규철 - 사라진 것들과 뒤에 남은 이들

5 실재의 사막에서

재난의 유토피아 또는 디스토피아: 프란시스 알리스와 나카무라 마사토
1 대지진

2 재난의 유토피아 또는 디스토피아

3 프란시스 알리스 - 정치적·시적 미술

4 나카무라 마사토 - 만드는 것이 살아가는 것

5 문제는 그 다음 날

작가의 죽음과 소멸된 원작: 마르셀 뒤샹과 솔 르윗
1 미술과 사물의 경계

2 미술이란 창작이 아니라 선택

3 마르셀 뒤샹 - 레디메이드의 레디메이드 복제품

4 솔 르윗 - 협업적 창의성의 미래

5 ‘서프라이즈’를 위하여

스펙터클 앞에 잃은 감각: 로버트 어윈과 라 몬티 영
1 스펙터클 - 이미지가 된 자본

2 미니멀리즘과 몰입의 공포

3 로버트 어윈 - 가시성의 한계를 실험하다

4 라 몬티 영 - 소리 속에서 살다

5 아직 끝나지 않은 노래

에필로그
미주

참고문헌

찾아보기

사람들은 늘 무언가를 잃어버린다

-현대미술로 읽는 상실과 트라우마



우리는 늘 무언가를 잃어버린다. 사랑하는 연인이 떠나고 가족이 죽기도 하며, 전쟁과 자연재해로 인해 삶의 터전을 송두리째 빼앗기기도 한다. 이 책은 현대사회에서 필연적으로 벌어지는 ‘상실’과 그 이후 찾아오는 ‘트라우마’를 예술 행위로써 애도하고 증언하려고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다. 온 가와라, 오노 요코, 양혜규, 이불, 마르셀 뒤샹, 솔 르윗 등 현대미술 작가 16인은 각각 연인과의 이별, 가족의 죽음, 동일본 대지진, 세월호 침몰 같은 재해, 원폭 피해와 공동체의 소멸, 더 나아가 미술사적 차원에서 원본과 감각의 죽음까지 이미지로는 재현할 수 없는 상실과 트라우마를 저마다의 방식으로 소개했다. 도저히 돌이킬 수도 붙들 수도 없는 상실의 사건 뒤에 개인과 사회에 나타난 다양한 증후를 예술로 제시함으로써, 우리 시대의 현주소를 신랄하고 생생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이 책은 단지 작품의 심미적 특성에 한정된 해석을 넘어, 정신분석과 사회학 등의 학제 연구로 미술가의 작업방식과 작품의 의미가 작동하는 상황, 즉 구조를 집중 분석함으로써 미술을 통한 인문적 사유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1. 남겨진 사람들은 무엇으로 살아가는가?

-현대미술로 전하는 우리 시대의 상실과 트라우마



삶은 잃어버리는 일의 연속이다. 사소하게는 아끼던 물건을 잃어버리고, 사랑하는 사람은 언젠가는 떠나가기 마련이며, 삼풍백화점 붕괴나 세월호 침몰과 같은 인재로 소중한 생명을 한꺼번에 잃은 뒤 사회 전체가 오래토록 비통해하고 우울해하기도 한다. 상처받고 아프고 괴롭고 치욕스러운 기억처럼 나쁜 기억일수록 사람들은 쉽게 잊지 못하고 끊임없이 돌이키고 되새기게 되는데, 오히려 진짜 아프고 죽을 것처럼 괴로운 경험은 제대로 기억되지도 못하고 트라우마가 되고 만다.

《남겨진 자들을 위한 미술》은 다양한 상실의 사건 뒤 겪게 되는 개인적이고 사회적인 증후들을 미술의 관점에서 읽어낸 책이다. 이 책은 온 가와라, 오노 요코, 양혜규, 이불, 마르셀 뒤샹, 솔 르윗 등 현대미술 작가 16인이 각각 연인과의 이별, 가족의 죽음, 자연 재해와 도시의 재앙, 더 나아가 미술사적 차원에서 원본과 감각의 죽음까지 이미지로는 도저히 재현할 수 없는 상실의 사건과 증후를 어떻게 애도하고 증언했는지를 보여준다.

이 책에서 논의하는 상실과 우울, 트라우마의 개념은 정신분석학에 기대고 있으나 이는 결코 미술가 개인의 심리적인 문제나 병리학적 장애로 한정되지 않는다. 이 책은 상실은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집단적인 과정이라고 말한다. 무엇이 사라졌는가, 그리고 그 뒤에 무엇이 남았는가를 살펴보고 누구와 함께 어떻게 애도하며 타인에게 증언할 것인가는 정치적이고 윤리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미술사학자 우정아는 동시대 미술에 생생하게 드러난 상실과 우울, 트라우마라는 증상을 치밀하게 분석하고, 개인과 사회구조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나아가 저자성과 감각의 죽음이라는 미술사적 쟁점까지 해석의 지평을 확장해나간다. 이 책은 작가의 미술작품 분석에서 시작해 정신분석과 사회학, 역사학 등 학제 연구를 통해 상실의 의미를 살펴봄으로써 우리 시대의 현주소를 신랄하고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전쟁과 폭력의 기억들은 파편적인 일상의 편린이 되어, 무감정의 상태로 질서정연하게 반복되는 [일일 회화]의 표면을 지속적으로 뚫고 나왔다. 이는 조형적 양식이나 지시적 이미지와는 구별되는 ‘구조’의 문제이다. 여기서 구조란 미술가가 작업하는 방식과 작품이 작동하여 의미를 산출하는 상황을 말한다. [일일 회화]에서는 심미적 특성이나 형상적 재현, 서사적 텍스트가 존재하지 않는 대신에, 트라우마의 증상들이 ‘구조’를 통해 발현되고 있다. 구조에 집중한 작품 해석 방식은 이 책에서 다루는 다른 미술가들의 경우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프롤로그 [현대미술로 전하는 우리 시대의 상실과 트라우마] 중에서



2. 16인의 현대미술 작가는 무엇을 잃어버렸는가?

-재현할 수 없는 근본적 상실에 대한 예술적 애도와 트라우마



프로이트에 의하면 인간은 대체 불가능한 대상을 잃어버리고 이를 극복할 수 없을 때 트라우마에 빠진다. 충격적인 상실을 경험한 사람들은 그 경험에 대해 순차적으로 재구성하거나 논리적으로 설명하지 못하고 그 순간의 공포만을 반복 경험하게 되는데, 이러한 트라우마 속에서는 상실의 사건은 논리적인 서사나 구체적인 이미지로 재현될 수 없다. 문학과 예술에서 역시 홀로코스트와 히로시마 원폭 같은 엄청난 사건은 궁극적으로 어떤 언어나 상징으로도 전달될 수 없다. 그 사건이 예술 작품이 되는 이상 고통과 상실을 당한 자들의 고통이 예술의 궁극적 목적인 ‘쾌락’으로 변질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남겨진 자들을 위한 미술》에서 소개하는 16인의 미술작가는 자신의 작품 속에서 ‘심미적 쾌락’이 과도하게 넘쳐난 나머지 그들이 잃어버린 소중한 것들의 존재/부재를 망각하지 않도록 경계하고 있다. 이들 작품 안에서 재현 불가능한 상실의 공포와 불안과 혼란은 미술작품으로 단순히 재현되는 것이 아니라 기법과 상징, 그리고 육체적이고 수행적인 방식으로 재연되기 때문에, 독자는 이들 작품이 무의미하거나 기괴해서 불편하게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책은 오히려 이러한 작품들 앞에서 느끼는 낯선 감정들이 오히려 우리 시대가 잃어버린 존재들에 대한 올바른 태도일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1) 사랑하는 존재를 잃어버린 사람들
이 책은 펠릭스 곤살레스, 쑹둥, 메리 켈리, 루이즈 부르주아, 온 가와라의 작품을 통해 연인과 가족, 그리고 일상의 근본적인 상실에 대해 이야기한다. 펠릭스 곤살레스 토레스 전시관 한가운데 사탕이 무덤처럼 쌓여있다. 펠릭스 곤살레스는 사랑하는 연인의 몸무게만큼 사탕을 쌓아두고 관람객이 이를 마음껏 가져갈 수 있도록 했는데, 이 [무제(러버보이)]는 시한부 선고를 받은 연인이 작가의 눈앞에서 사라져 가는 공포를 미리 연습하기 위한 일종의 상징이었다. 중국의 대표적 작가 쑹둥의 [버릴 것 없는]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어머니가 편집증적으로 수집한 온갖 잡동사니를 전시한 것으로, 어머니와 쑹둥은 작품으로써 상실감을 극복하고 진정한 애도를 이룰 수 있었다([펠릭스 곤살레스 토레스와 쑹둥: 떠나간 연인]). 메리 켈리는 자신이 낳은 아들이 장차 성장하여 가부장적 법질서에 편입될 것을 두려워하며 아이의 성장 과정을 빠짐없이 그리고 건조하게 기록해나갔다. 벽에 나란히 걸린 기저귀들, 아이가 말한 단어를 기록한 보고서 등을 전시한 [산후기록]이 바로 그것이었다([메리 켈리와 루이즈 부르주아: 거세된 여자들]). 온 가와라는 2차 세계대전에 일본이 패망하고 폐허가 된 도시에서 난생 처음 ‘개인’으로서의 일상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날의 날짜와 신문 기사를 스크랩한 반복적인 그의 작품 [일일 회화]는 누구나 예외 없이 평범한 일상 속에 ‘통계적인 죽음’을 맞이할 것임을 의미하는 것이었다([구원 없는 삶: 온 가와라와 오노 요코]).



그가 기록한 ‘뉴스’는 다양한 종류의 ‘죽음’을 하루 단위, 또는 주 단위로 무감각하게 세면서 사실상 죽음이 늘 가까이 있음을 상기시킨다. 그러나 신문이 매일 사망자 수를 헤아리고 있을 때에도 온 가와라의 평범한 일상은 계속된다.(중략) 온 가와라의 극도로 단조로운 프로젝트가 보여주는 것은 끝없이 돌아가는 시계와 달력 날짜의 지루함이 재앙을 불러올 수도, 평범한 하루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잔인한 사실이다. 온 가와라는 작업을 통해 구원과 종말을 거부한 채 영웅이 아닌 어떤 평범한 이의 통계적인 죽음을 추구했다.

-[구원 없는 삶: 온 가와라와 오노 요코](87~89쪽) 중에서



(2) 삶의 터전과 공동체가 사라져버린 뒤
이 책은 사회구조적인 상실과 트라우마를 드러낸 작가로 히지카타 다쓰미, 양혜규, 이불, 안규철, 나카무라 마사토 등을 소개한다. 일본은 패전 이후, 한국은 1960년대 이후 급격한 도시화?산업화의 물결 속에 변해버린 고향의 모습을 히지카타 다쓰미는 ‘부토’라는 괴기스러운 몸짓의 무용으로 표현했고, 양혜규는 아예 미술관을 인천의 낙후한 동네 ‘사동 30번지’로 옮겨놓았다([고향을 잃은 사람들: 히지카타 다쓰미와 양혜규]). 도시는 점점 더 거대해지고 첨단으로 흘러갔지만 사람들은 더 많은 것을 잃어버렸다.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이 무너지고 대구 지하철 참사와 세월호 참사가 이어졌다. 두 자릿수의 경제 성장률 뒤에는 도시의 재앙이 늘 도사리고 있었다. 이러한 도시의 트라우마를 이불은 최첨단 노래방 기기를 설치한 고립된 공간으로 표현했고, 안규철은 물이 빠지면 ‘골든타임’이라는 글씨가 나타나는 화장실 개수대로 드러내기도 했다([우리의 밝은 미래: 이불과 안규철]). 또한 나카무라 마사토는 동일본 대지진으로 인해 사라져버린 공동체를 재건하는 일을 도움으로써 미술은 ‘만드는 것이 살아가는 것’이라는 비전을 제시했고, 이에 반해 벨기에 작가 프란시스 알리스는 멕시코 대지진으로 무너진 도시에서 묵묵히 걷기를 반복하는 ‘시적 허용’을 통해 시대의 부조리를 고발하고자 했다([재난의 유토피아 또는 디스토피아: 프란시스 알리스와 나카무라 마사토]).



[나의 거대 서사:Because Everything]에서 낱낱이 허물어진 유토피아의 상징들은 바로 21세기 대한민국의 모습일 수도 있다. 이불의 글래머러스한 동시에 그로테스크한 근대 도시의 무덤은 우리가 과거에 꿈꾸어왔던 찬란한 미래가 사실은 내재적인 폭력과 깊이를 알 수 없는 황량함을 품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억누르려고 해도 다시 되돌아오는 낯선 과거의 공포, 바로 언캐니의 근원은 폭력적인 이데올로기가 되어 현재를 장악한, 유토피아에 대한 실패한 이상이었다.

-[우리의 밝은 미래: 이불과 안규철](170쪽) 중에서



(3) 스펙터클의 시대, 원본과 감각의 상실
《남겨진 자들을 위한 미술》은 예술의 존재방식에서 또 다른 의미의 ‘상실’이 벌어지고 있음을 포착하고 있다. 무한 복제되는 사물들 가운데 예술은 더 이상 작가나 원본의 지위를 상실하게 된 것이다. 뒤샹이 소변기를 미술관에 올려놓았을 때 미술의 패러다임은 완전히 뒤집혔고, 심지어 솔 르윗은 단순한 도면을 제도사에게 건네줄 뿐 완성된 작품에 대한 권리마저 포기하고자 했다. 점점 더 스펙터클로 치닫는 미술관에서 로버트 어윈과 라 몬티 영은 자극에 무뎌진 사람들의 감각을 일깨우고자 했다([작가의 죽음과 소멸된 원작: 마르셀 뒤샹과 솔 르윗]). 로버트 어윈은 관람객에게 아무 것도 없는 미술관에 선 하나만으로 새로운 공간을 지각하는 체험을 제공했으며, 플럭서스의 멤버 라 몬티 영은 일상의 소음 속을 제거한 공간에서 단일한 음만을 들려줌으로써 듣는 이가 예민한 청각을 벼릴 수 있도록 했다. 감각과 의식을 일깨워 더 많이 보고 더 많이 듣는 것이 삶과 시대를 바꿔낼 수 있다는 믿음에서였다([스펙터클 앞에 잃은 감각: 로버트 어윈과 라 몬티 영]).



이와 같은 근본적인 변환과정에서 소변기라는 사물과 뒤샹이라는 작가 사이의 관계는 부재와 상실, 소외로 이루어져 있다. 뒤샹은 이를 직접 만들지 않았고, 작가의 익명만 떠돌았으며, 소변기라는 사물은 본래 의미와 동떨어진 채 유통되었고, 작품 자체는 분실되었다. 따라서 소변기와 뒤샹 사이의 유일한 연결고리는 노동이라는 창조활동이 아니라 서명이라는 이름으로 활성화되는 작가의 권력이었다. 뒤샹의 창작행위란 ‘이것이 미술이다’라고 지정한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작가의 죽음과 소멸된 원작: 마르셀 뒤샹과 솔 르윗](236쪽) 중에서



내일이면 헤어질 연인의 그림자를 따라 그리느라 연인에게 이별의 말을 건네는 것마저 잊었다는 코린트 섬의 전설처럼 상실과 부재는 애초에 예술의 기원이었을지도 모른다. 기억조차 할 수 없이 사라져버린 것, 처음부터 부재했던 것을 어떻게 포착하는가에 대한 예술가들의 고뇌는 상실을 숙명으로 삼아 살아갈 수밖에 없는 현대인의 삶에 늘 ‘시의적절’한 주제다. 《남겨진 자들을 위한 미술》은 일상적이고도 파국적인 상실과 재난 뒤에 남겨진 우리들에게 가슴 한구석 허전한 곳을 되돌아보고 깊이 애도하도록 권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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