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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초당] 호, 조선 선비의 자존심 : 조선 500년 명문가 탄생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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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초당] 호, 조선 선비의 자존심 : 조선 500년 명문가 탄생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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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 필명이나 가명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지만, 오늘날 우리의 대부분은 하나의 이름만 평생 사용한다. 하지만 조선의 선비는 달랐다. 부모와 스승이 부르는 이름이 달랐고, 처음 만나는 이에게 소개하는 이름이 달랐으며, 친한 친구들끼리 부르는 이름도 달랐다. ‘명’과 ‘자’와 ‘호’가 바로 그것인데, 부모나 스승이 지어주므로 함부로 사용할 수 없었던 ‘명’과 ‘자’와는 달리, ‘호’는 자신이 마음대로 지어서 부를 수 있었다. 다시 말해, 자신의 의지와 사상, 성격이 담긴 개성적인 삶의 지표가 바로 ‘호’였던 셈이다.

『호, 조선 선비의 자존심』은 조선의 역사를 이끌어간 천재들의 ‘호’를 분석하고 집대성한 책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지명을 ‘호’로 삼은 율곡 이이나 연암 박지원, 마음에 품은 의지를 ‘호’로 삼은 퇴계 이황과 초정 박제가, 취향을 ‘호’로 삼은 매월당 김시습이나 단원 김홍도까지. 조선을 뒤흔든 선비들의 ‘호’는 물론, 한힌샘 주시경과 백범 김구 등 근현대사의 주요 인물들의 ‘호’도 아우른다. 이 책을 통해 조선 시대부터 현대까지의 역사적 흐름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이름의 의미 또한 되새길 수 있을 것이다.

저자 : 한정주

저자 한정주는 역사 평론가 겸 고전 연구가. 고전?역사 연구회 뇌룡재(雷龍齋) 대표. 1966년 전남 고흥에서 태어나 광주 석산고와 동국대 사학과를 졸업했다. 정치적ㆍ사회적 격동기였던 1980?90년대에 대학을 다니고 사회 활동을 한 탓에 정작 역사 공부보다는 사회과학 서적에 심취해 지내다가, 우연히 찾아온 기회를 통해 뒤늦게 다시 역사와 고전 읽는 즐거움을 깨달았다. 그리고 20여 년 동안 사회 과학서와 역사서, 고전 등을 탐독하는 과정에서 습득한 지식과 체득한 사상을 사람들과 소통·공유하고 싶은 생각에 불혹의 나이에 접어든 2005년 무렵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다. 베네디토 크로체의 “모든 역사는 현대사다.”라는 말과 연암 박지원의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철학을 바탕 삼아, 역사와 고전을 현대적 가치와 의미로 다시 발견하고 새롭게 해석하는 것을 글쓰기의 목표로 삼고 있다. 현재 마음을 함께하는 여러 벗과 더불어 인사동 한 모퉁이에서 역사와 고전을 공부하고 연구하며 집필하고 강의하는 소박한 모임 ‘고전?역사 연구회 뇌룡재(雷龍齋)’를 운영하고 있다. 아울러 인터넷 신문 헤드라인뉴스(www.iheadlinenews.co.kr)에 인문(人文)에 관련된 다양한 글을 연재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조선을 구한 13인의 경제학자들』, 『한국사 전쟁의 기술』, 『율곡, 사람의 길을 말하다』, 『조상의 거상, 경영을 말하다』, 『천자문뎐』, 『한국사 천자문』, 『영웅격정사 - 인물 비교로 보는 사기와 플루타르크영웅전』이 있다. 또한 쓰고 엮은 책으로는 『조선 지식인의 독서노트』, 『조선 지식인의 글쓰기 노트』, 『조선 지식인의 아름다운 문장』등 <조선 지식인 시리즈>가 있다.

머리말 호(號)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

제1장. 여유당 정약용
― 남인으로 산다는 것의 의미

제2장. 율곡 이이
― 기호사림의 본향

제3장. 면앙정 송순과 송강 정철
― 가사 문학의 산실(産室), ‘면앙정’과 ‘성산’

제4장. 단원 김홍도·혜원 신윤복·오원 장승업
― 조선의 대표 화가, 3원(三園)

제5장. 남명 조식
― 대붕의 기상을 품은 산림처사

제6장. 삼봉 정도전
― 도담 삼봉인가? 삼각산 삼봉인가?

제7장. 퇴계 이황
― 평생 ‘물러날 퇴(退)’ 한 글자를 마음에 품고 살다!

제8장. 일두 정여창·사옹 김굉필·정암 조광조·회재 이언적
― 선비 정신의 사표(師表), 동방 사현

제9장. 매월당 김시습과 서계 박세당
― 수락산이 맺어준 200년의 인연

제10장. 백사 이항복과 한음 이덕형
― 조선의 관포지교, 오성과 한음

제11장. 화담 서경덕과 토정 이지함
― 송도삼절과 최초의 양반 상인

제12장. 교산 허균과 죽도 정여립
― 만민평등과 천하공물을 부르짖은 두 혁명가

제13장. 고산 윤선도와 공재 윤두서
― 땅끝 마을 해남에서 꽃피운 예술혼

제14장. 우암 송시열과 백호 윤휴
― 조선의 주자 vs. 사문난적

제15장. 반계 유형원과 잠곡 김육
― 개혁을 설계한 땅, 부안 우반동과 가평 잠곡

제16장. 성호 이익과 순암 안정복
― 실학의 산실(産室), ‘성호학파’

제17장. 연암 박지원과 담헌 홍대용
― 북학파의 비조(鼻祖)

제18장. 홍재 정조 이산
― ‘임금은 모든 신하와 백성의 스승’이라는 군사(君師)라 자처한 제왕

제19장. 청장관 이덕무와 초정 박제가
― ‘기호(記號)’와 ‘소전(小傳)’, 글로 그린 자화상

제20장. 추사 김정희
― 추사(秋史)인가? 완당(阮堂)인가?

부록 1. 자설(字說) : 자(字)란 무엇인가?
부록 2. 작호론(作號論) : 호(號)는 어떻게 짓는가?
부록 3. 조선 시대 인물들의 자호(字號) 소사전
부록 4. 근·현대사 인물들의 호(號) 소사전

◎ 명(名)과 자(字)가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한 생물학적 자아(태생적 자아)에 가깝다면, 호(號)는 선비가 자신의 뜻을 어디에 두고 마음이 어느 곳에 가 있는지를 나타내는 이른바 사회적 자아를 표상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호를 살펴보면 그의 사람됨과 더불어 그 삶의 행적과 철학을 어렵지 않게 짐작해볼 수 있다. 더욱이 호는 그 사람의 내면세계(자의식)를 강렬하게 드러내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에, 그들의 뜻과 의지 역시 읽을 수 있다.
_ pp5(‘머리말 중에서)

◎ 내 병은 내가 스스로 잘 안다. 결단력이 있으나 꾀가 없고, 선(善)을 좋아하지만 가릴 줄을 모른다. 마음 내키는 대로 즉시 행동하며 의심할 줄도 두려워할 줄도 모른다. 스스로 그만둘 수 있는 일인데도 마음이 움직이면 억제하지 못하고, 하고 싶지 않은 일인데도 마음에 걸려 찜찜한 구석이 있게 되면 그만두지 못한다.
어려서부터 마음 내키는 대로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도 의심하지 않았고, 나이가 들어서는 과거 공부에 빠져 돌아볼 줄 몰랐다. 서른이 넘어서 지난날의 잘못을 깊게 깨달았으나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 때문인지 선(善)을 끊임없이 좋아하였으나 세상의 비방을 홀로 짊어지고 있다. 이것이 내 운명이란 말인가! 이모두가 타고난 내 본성 때문이니, 어찌 내가 감히 운명을 탓할 수 있겠는가! 나는 노자(老子)의 이런 말을 본 적이 있다. 거기에는 “신중하라! 겨울에 시냇물을 건너듯〔與兮若冬涉川〕. 경계하라! 사방의 이웃을 두려워하듯〔猶兮若畏四隣〕.”이라 했다. 이 두 마디는 참으로 내 병을 고치는 약이 아닌가 싶다. - 『다산시문집』, 「여유당기」
_pp15~16(‘여유당 정약용’ 중에서)

◎ 동인의 탄핵을 받아 네 번째로 낙향한 지 4년이 지난 1589년, 조선 사회를 발칵 뒤집어놓은 이른바 ‘정여립 역모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으로 동인이 실각하자 정철은 우의정에 발탁되어 중앙 정계로 복귀한다. 그는 이때 ‘정여립 역모 사건’을 국문하는 최고 책임자가 되었다. 그런데 정철은 마치 고향으로 쫓겨나 분루(憤淚)를 삼켜야 했던 지난 세월을 복수라도 하듯이 동인 세력을 철저하게 짓밟았다. …(중략)…그에 대한 업보였을까? 정철 또한 당쟁의 피바람을 피하지 못하고,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또다시 동인의 탄핵을 받아 강화도의 송정촌(松亭村)에서 말년을 보내다 죽음을 맞는 불행을 겪어야 했다. 정철은 성산 앞을 흐르는 아름다운 내(강), ‘송강’의 자연 풍경은 물론 그와 하나 되어 사는 선비들의 삶을 미학적으로 형상화하고 문학적으로 완성시켰다. 그러나 정치가 정철은 ‘송강’의 아름다움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잔혹한 ‘살인귀’의 이미지를 남기고 있을 뿐이다.
_pp75(‘면앙정 송순, 송강 정철’ 중에서)

◎ 정도전의 삶과 죽음을 볼 때, 그는 유학(儒學)을 배우고 벼슬에 나선 이후 죽을 때까지 철저하고 완벽하게 ‘정치적인’ 인간이었다. 그는 유배형에 처해지고 개경 출입이 금지되어 미래가 전혀 보이지 않은 채 유랑 생활을 했던 9년여의 암울한 세월 동안에도 정치적으로 재기할 날을 기다리며 준비를 했을망정 결코 정치에 대한 뜻을 단 한순간도 잊은 적이 없는 사람이다. 이러한 까닭 때문이라도, 모계(母系)의 미천한 신분 때문에 갖은 정치적 곤욕을 치렀던 정도전이 외가와 관련이 있는 단양의 ‘도담 삼봉’을 자호(自號)로 삼았다는 것은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_pp145(‘삼봉 정도전’ 중에서)

◎ 그런데 정작 놀라운 사실은 왕위에 오른 정조는 왕세손 시절 호에 새긴 ‘홍(弘)’ 자의 뜻처럼 넓은 도량으로 정적들을 상대했다는 점이다. 정조는 임금이 되자 가장 먼저 자신이 일찍이 노론 세력이 역적으로 몰아 죽인 ‘사도세자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예전에 자신의 어머니를 죽였다고 왕실과 조정의 대신들을 몰살하다시피 한 연산군처럼 피의 복수를 가하지는 않았다. 물론 화완옹주, 정후겸, 홍인한, 김구주 등 자신을 직접적으로 해치려고 모의한 역적들과 그 추종 세력에 대해서는 일벌백계 차원에서 중형(重刑)을 가했다. 그러나 이들의 뿌리이자 최대 정적이었던 노론(老論)이라는 붕당에 대해서는 국정 운영의 파트너로 대우했다. 일찍이 왕세손 시절 ‘홍재’라는 자호에 담았던 뜻처럼 넓은 도량으로 정적인 노론의 신하들을 대우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정조가 폭군 연산군의 전철을 밟지 않고 오히려 세종과 더불어 조선사를 빛낸 최고의 성군으로 자신의 치세(治世)를 이끌 수 있었던 이유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_pp504~505(‘홍재 정조 이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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